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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길

목포의 갓바위에서 낙산거사

by 푸른들2 2009.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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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거사의 여정은 남도 끝자락 목포의 갓바위에 잠시 멈추고
 
                   
                          갓바위앞 보행교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옛추억을 음미 하면서
 
                   
                     예전에는 배를 타고 나가야 전면이 보이던게 지금은 보행교 위에서
 
 
                    
                         보행교 덕분에 편하게 마음것 보는게 내가 다녀간 5년전과 차이
 
                     
 
 
                    
                      
                        부부의날 갓바위 등지고 바다를 응시하는 옆지기 무슨 생각을
 
 
                      
 
 
                      
 
 
                      
 
 
                      
 
 
                      
 
 
                       
 
 
                      
                         전에는 갯벌과  한적한곳이 이렇게 신시가지로 상전이 벽해
 
                      
                          입암산을 뒤로하고 해양 유물전시관 앞에서 옆지기와 한순간을
 
                       
                            전시관앞 비파나무 앞에서 남쪽에만 있는지 처음 본것이다
       
                      
                        짱뚱어탕 처음 먹어보는 해남의 별미라고  해서 시식을 해보고
 
                      
                       짱뚱어탕에도 밑반찬이 많이 나오는건 이쪽의 풍습이고 맛갈 스러워
 
 
                      
 
 
                      
                        
 
                      
                           부부의 날인데 대흥사 들어가는 길에 폭우가 쏫아지고
 
                       
 
 
목포팔경의 하나 갓바위...

목포시 용해동(주민들은 성자동이라고 부른다.) 갓바위마을에 있는 갓바위는 사람이 갓을 쓰고 아름다운 영산강 끝자락을 굽어보고 있는 모습으로 애절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 성자동의 주봉도 갓바위의 이름을 따서 입암산이라 하는데 예부터 목포 사람들은 입암반조(笠岩返照)라 하여 목포팔경의 하나로 손꼽았으며 명승 중의 명승으로 칭송하였다.

바닷가에 서 있는 한 쌍의 갓바위는 해식작용과 풍화작용이 빚어낸 것으로 목포의 관광보물이다. 바다를 향하고 서 있는 이 바위는 큰 것은 8미터 가량, 작은 것은 6미터 가량으로 바위 표면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벌집 모양의 구멍들이 송송 박혀 있다. 물이 들어차면 바위 표면이 염분에 젖었다가 물이 빠지면 수분이 용해되어 실리카 성분이 암석 표면에 남아 침전되면서 이와 같은 표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2001년 10월 문화재청은 지질광물, 고생물 자료 등 자연문화재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자연유산보존협회에 의뢰하여 전국의 ‘지질?광물문화재자원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 조사대상에 목포 갓바위가 포함되었는데 조사 책임을 맡은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김수진 교수는 갓바위가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전설

효자가 울다가 바위가 된 아버지 바위, 아들바위, 갓바위...

전설로는 큰 바위는 아버지바위 이고 작은 바위는 아들바위 라 하며 둘다 머리에 삿갓을 쓴 형태지만 역시 아들 바위의 삿갓이 보다 근사하다. 목포는 1897년에야 일본인들이 한국침략의 서남거점으로 개항해 오늘날처럼 도시로 발전했다. 그 전에는 영산강하구를 지키는 보잘 것 없는 나루로 조그만 마을이 있었을 뿐이다. 이 갯마을에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병든 아버지를 모신 가난한 소금장수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포구에 실려 오는 소금을 받아 인접마을에 팔아서 끼니를 이어갔다. 가난하여 약 한 첩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청년의 아버지는 날로 병환이 악화되어 갔다. 청년은 안타깝기만 했다. 그는 스스로 큰 결심을 했다. 이번에는 아버지 약값을 충분히 벌어야 집에 돌아온다고 다짐했다. 힘에 겹도록 소금 짐을 짊어지고 떠났다. 그러나 딱하게도 소금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갈 수 없었던 청년은 날품이라도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부유해 보이는 길갓집을 찾아 들었다. 그 집주인은 소문난 구두쇠로 한 달 동안을 일하고 품삯을 달라는 청년에게, 그동안 먹여준 밥값도 못한 주제에 품삯은 무슨 놈의 품삯이냐 며 쫓아버렸다. 아버지 약값을 구하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터라 길거리에 주저앉아 신세한탄만 하고 있었다. 그 마을을 지난 던 도승이 청년을 보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기에 그리 한숨을 쉬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자초지종 그의 처지를 말했다. 얘기를 들은 도승은 크게 낯 색이 변하며 청년을 꾸짖었다. 청년은 한가지만 생각했지 깊은 생각이 부족했네, 자네가 약값을 마련하겠다고 타향을 전전하고 있는 동안 병든 아버지는 누가 돌보았겠으며 그동안에 죽었다면 애써 약값을 마련했다 한들 무슨 소용 있겠나 그때서야 병든 아버지를 생각한 청년은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돌보는 이 없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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