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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자료모음

홍성태의 세상읽기。대통령 가족 여행

by 푸른들2 2010. 2. 6.


홍성태의 세상읽기。대통령 가족 여행

 

하늘은 어버이

대지는 어머니시거늘

어찌하여 천지의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는가

 

온 곳도 갈 곳도 모르는,

야 이 바보 천치야

-
수경, 2009년 11월.

 

수경 스님은 새만금을 지키기 위해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초인적인 삼보일배를 수행했고, 망국적인 '한반도 대운하'를 막기 위해 4대강을 도보로 순례하는 '생명의 강 기도 순례'를 수행했고, 사실상 '4대강 죽이기'이자 '대운하 살리기'인 '4대강 살리기'를 막기 위해 가장 고통스러운 오체투지를 수행했다.

그러나 이런 성스러운 노력과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그악스럽게 '4대강 죽이기'를 강행하고 있다. 이에 맞서 4대강 죽이기 저지 국민
소송과 국민 서명이 펼쳐지고 있고,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를 비롯한 각 종단의 어른들이 나서서 강론과 설법과 기도를 쉬지 않고 있다. 국민과 하늘이 외치고 있다. 생명의 강을 죽이지 말라고.

'4대강 죽이기'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크나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딸과 손녀까지 대동한 인도와 스위스로 '해외 순방'을 떠났다. '대통령 특별기'는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의 말마따나 졸지에 '대통령 가족
여행 특별기'가 되고 말았다.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김 여사 내외의 코디 조언 등을 위해 자연스럽게 동행한 것으로, 숙박비 등은 자비 부담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가 막힌 '가족 여행'에, 더 기가 막힌 '가족 여행 해명'이 아닐 수 없다. 중차대한 국사를 다루는 자리에 겨우 '코디 조언 등'을 위해 딸과 손녀를 대동하는 게 어떻게 '자연스럽게 동행'한 것일 수 있는가? '숙박비 등은 자비 부담'이라니 과연 무엇을 얼마나 지불했는지 정확히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 지난 2002 월드컵 4강 진출 직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아들 이시형 씨와 히딩크 감독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의 오른쪽은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 ⓒ오마이뉴스

이 기사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2002년 7월 3일에 찍힌 이명박 대통령의 왼쪽 사진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날 히딩크 감독의 명예서울시민증 수여식에서, 당시 시장이던 이 대통령은 느닷없이 자신의 아들과 사위를 불러서 히딩크 감독과 기념 촬영을 하게 해서 큰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서는 2002년 7월 4일 보도된 <오마이뉴스> 기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기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과 사를 올바로 구분하지 못하고 구설수를 빚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에 대한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의 기사를 보자.

이명박 서울시장이 지난 3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히딩크 감독의 명예 서울시민증 수여식장에서 자신의 아들과 사위를 불러 기념촬영을 하도록 해 구설수에 올랐다.

(…) 이날 이명박 시장 아들의 '깜짝 기념 촬영'은 히딩크 감독의 답사와 네덜란드 대사의
축사가 끝난 직후인 오후 4시 50분경 발생했다. "질문이 있는 기자들은 질문을 하라"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명박 서울시장은 "아, 잠깐만"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저지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사회자는 "사진 촬영을 하겠다"라고 바로 말을 바꿨다. 물론 미리 발표된 식순에 따르면 '기념 촬영'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촬영 참여자였다. 이 시장은 히딩크 감독과 명예시민증을 들고 사진을 찍은 뒤 주한 네덜란드 대사 그리고 시청 직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촬영은 그쯤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시장이 다시 객석 어딘가로 손짓을 하자
축구공을 들고 있던 붉은 티셔츠반바지 차림의 20대 중반 남성과 양복차림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무대 쪽으로 나갔다. 이들은 다름 아닌 이 시장의 아들과 사위였다. 히딩크 감독과 촬영을 마친 이 시장의 사위는 "회사까지 빼먹고 왔다"고 말하면서 흐뭇해했다.

결국 이날 예정돼 있던 히딩크 감독과 기자들의 일문일답은 이 시장의 공적·사적인 사진촬영에 밀려 취소됐다. (김지은, '이명박 시장, 공식
행사를 '집안일'로 착각 '히딩크 행사'에 아들·사위 불러 기념 촬영', <오마이뉴스> 2002년 7월 4일)


생명의 강을 죽이는 정책을 강행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코디 조언 등'을 위해 딸과 손녀까지 대동하고 '해외 순방'을 가다니, 이명박 대통령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 한가한 '가장'인 것 같다. 아니 서울시장 때는 서울시를 자신의 사유물로 여기고 자신의 신에게 봉헌하는 황당한 문제를 일으키더니, 대통령인 지금은 아예 나라를 자신과 가족의 사유물로 여기고 있어서 더욱 더 큰 문제를 자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절로 든다. "모래자갈은 대통령의 것이 아니다!"는 서울대 김정욱 교수의 일갈이 다시금 귓전에 맴돈다.

요즘에 이명박 대통령이 큰 비판을 받는 것은 잘못된 정책을 너무도 고집스럽게 강행하는 것과 엄청난 말 바꾸기를 너무나 쉽게 하는 것 때문이다. '4대강 죽이기'와 '세종시 줄이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점에서 정운찬 총리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개혁적인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었기에 그에 대한 기대는 상당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결국 참혹하게 배신당한 것 같다. 정운찬 총리 지명자를 둘러싸고 큰 논란이 빚어지기 시작하던 2009년 9월 초에 <정치
교회>라는 훌륭한 책의 저자인 기자 김지방이 쓴 다음의 기사를 보자.

"녹색 뉴딜은 토목 건설을 중심으로 가시적 성과에만 집착하는 예전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의 두 번째 총리로 지명된 정운찬 서울대 교수가 한 말이다. 정 총리지명자는 올해 초 기독교계 계간지 <새길 이야기> 봄호에 실은 글에서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총리로 지명된 그가 과연 이명박 정부 안에 들어가 자신의 말을 얼마나 실천할지 주목된다.

정 교수는 이 글에서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을 '토목 공사에 녹색 칠하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는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중심으로 이른바 녹색 뉴딜 정책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1930년대
미국의 뉴딜에다가 녹색 이미지를 더하고자 한 것"이라고 평가절하면서 미국의 뉴딜 정책이 단순한 대규모 치수 사업이 아니라, 광범위한 금융 규제와 노동자의 권익 보호, 사회 안정망 등 국가 개입이 확대된 것으로 경제 운용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며 "토목 건설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단기간에 보여주려는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정 총리 지명자는 또 정부의
리더십과 신뢰 회복을 주문했다. 그는 "정부의 경제팀이 신뢰와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며 "스스로 일관된 위기 극복을 위한 청사진을 가져야 한다. 큰 그림 없이 대증적으로 대응하다가는 스스로 일관성을 잃고 신뢰도 잃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 글의 결론에서 정 총리 지명자는 "과거의 어떤 위기보다도 사회
통합이 중요하다"며 "이번 위기에서 경제적 약자의 소득기반을 튼튼히 해주지 않는 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지도자의 철학과 비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지방, '정운찬 "녹색뉴딜은 토목 공사에 녹색 이미지 입힌 것"', <국민일보> 2009년 9월 4일)


대통령도 총리도 말 바꾸기의 달인과 같은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으니 '정부의 리더십과 신뢰 회복'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코디 조언 등'을 위해 딸과 손녀를 대동하고 '해외 순방'을 다니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수많은 국민들의 뜻을 뿌리치고 잘못된 정책을 강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지금 4대강 사업의 반대자들이 완성된 뒤에는 지지자들이 될 것이다"는 그의 말은 정말이지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거짓말이
연구홍보의 이름으로 횡행한다고 해서 사실과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야말로 표를 얻기 위한 정략적인 목적으로 '4대강 죽이기'를 '4대강 살리기'라고 극구 홍보했던 것이라고 또 다시 '고백'하게 될 것이다.

 

글. 홍성태 상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