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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시장(市場)을 이길 수 없나?

by 푸른들2 2010. 2. 7.


아무도 시장(市場)을 이길 수 없나?

 

 

 

여의도 거리에 떨어진...

5만원권은 얼마나 빨리 없어질까?

 

정글경제를 살아가는 이들은 늘 시간가치와 리스크와 인간과 시장을 생각해야 한다. 미래의 안개 속에 도사린 온갖 리스크를 생각해야 하고, 미래의 돈과 현재의 돈의 상대적인 값어치를 따져야 하며, 행동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욕구와 정보에 따라 춤추는 시장의 생리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시장을 이기려는 열망을 가져도 좋을까?

 

올리스는 왜 24년을 감옥에서 보낼 뻔 했나

 

2004년 3월 미국 휴스턴 연방지방법원 심 레이크(Sim Lake) 판사는 제이미 올리스(Jamie Olis)라는 30대 후반 남자에게 24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에너지업체 다이너지(Dynegy)의 임원이었던 올리스는 대규모 회계부정을 저질러 유죄평결을 받았다. 형을 살고 나오면 60대 초반 노인이 될 그의 삶은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5년 10월 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회계부정에 따른 투자자 손실을 잘못 산정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당초 레이크 판사는 어떤 논리로 올리스에게 그토록 무거운 형을 내렸을까? 그는 올리스가 ‘프로젝트 알파’라는 거래를 통해 거액의 부채를 숨긴 사실이 알려지자 다이너지 주가가 급락했고, 애꿎은 투자자들이 그만큼 손실을 입었으며, 1억 달러 이상 손실을 입힌 사기에 대해서는 20년 이상 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양형기준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하지만 항소심 판사는 주가 하락의 많은 부분을 올리스의 사기 탓으로 돌리는 데에 무리가 있다고 봤다.

 

항소심 후 다시 열린 재판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검사 측 전문가는 회계부정 사실 발표 후 이틀 간 다이너지 주가가 11.3달러 하락했는데 이 중 4.45달러는 회계부정 탓이라고 주장했다. 검사는 이를 근거로 올리스에게 최고 15년 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호인 측 전문가로 나선 조셉 그런드페스트(Joseph Grundfest) 스탠퍼드 로스쿨 교수는 회계 부정이 언제 얼마나 다이너지 주가를 부풀렸는지, 주가 하락 중 얼마를 회계부정 탓으로 돌려야 하는지를 검사 측이 입증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레이크 판사는 결국 2006년 10월 올리스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그는 실제로 5년 3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당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가설

 

올리스의 죄값을 놓고 벌어진 논리대결의 바탕에는 중요한 경제이론이 깔려 있다. 효율적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 EMH)이 그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효율적 시장(efficient market)에서 거래되는 금융자산의 가격, 특히 주식 값은 이미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all available information)를 반영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이런 시장에서 가격은 자산 가치를 충실히 반영한다. 그 가격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정보가 나올 때만 움직인다.


이런 생각은 미국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대법원은 1988년 ‘베이식-레빈슨(Basic Inc v Levinson)사건’ 판결 때 효율적시장가설에 바탕을 둔 ‘시장에 대한 사기(fraud on the market)이론’을 받아들였다.

 

그 논리는 이렇다. 주가는 모든 정보를 반영하므로 투자자를 오도하는 회계정보도 주가에 영향을 줄 것이다. 주가가 기업의 기본적 가치(fundamental value)를 충실히 반영한다고 믿는 투자자들은 모두 회계부정의 피해를 입는 셈이다. 그 정보에 직접 의존하지 않은 투자자들도 피해자로 볼 수 있다. (집단소송 전문 변호사들은 이 판결에 환호했다. 그들은 회계부정 사실이 밝혀져 주가가 급락했다면 이는 그때까지 회계 부정 때문에 주가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올리스에게 중형을 선고한 논리의 바탕에도 이런 생각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올리스 사건에서는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 가운데 너무 많은 부분을 프로젝트 알파 회계부정 탓으로 돌리는 건 맞지 않다는 게 항소심의 결론이었다. 다른 수많은 악재들이 함께 주가를 떨어트렸을 것이다.

 

그런드페스트 교수는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장래 이익을 앞당겨 당장의 이익을 부풀리는 분식회계는 기업의 기본적 가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프로젝트 알파 문제가 언론에 처음 터졌을 때 주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2001년 9.11테러 직후 S&P500지수가 10% 떨어져 6000억달러가 날아갔을 때 테러리스트들의 죄값도 그만큼이라고 산정할 수 있을까? 물론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인명 피해는 별도로 해야 할 것이다.)

 

효율적시장가설은 이렇듯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법정에서까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올리스 사건은 이 가설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여의도 거리에 떨어진 5만원권은 얼마나 빨리 없어질까?

 

사람들이 모든 정보를 가장 적절히 활용한다는 걸 강조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시장가설의 뿌리는 합리적기대(rational expectations)이론과 같다. 효율적시장에 관한 이론은 1960년대 이후 40여 년 동안 금융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2009년 12월 94세를 일기로 타계한 폴 사뮤엘슨(Paul Samuelson, MIT)이 가꾼 토양에 24세 연하의 유진 파마(Eugene Fama, 시카고대)가 꽃을 피웠다.

 

완벽하게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아무도 내일 주가를 알 수 없다. 오늘 주가를 움직일 정보는 이미 오늘 주가에 모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내일 주가는 내일 뉴스에 따라 움직인다. (내일 뉴스를 오늘 알 수 있다면 그건 이미 뉴스가 아니다.) 그래서 주가는 술 취한 카푸친 씨의 걸음처럼 랜덤워크(random walk)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장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전문투자자도 늘 시장을 이기지는 못한다. 몇 차례 시장을 이겼다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효율적인 시장은 아무에게도 시장평균보다 높은 리스크를 안지 않으면서 시장평균을 웃도는 수익률을 올리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공짜점심(free lunch)은 없다는 이야기다.

 

효율적시장가설 지지자들은 펀드매니저들의 종목선정 실력이 침팬지보다 나을 게 없다며 모욕을 준다.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차라리 시장평균 수익을 추구하는 인덱스펀드(index fund)에 들라고 권한다. 하지만 1977~1990년 피델리티마젤란펀드(Fidelity Magellan Fund)를 맡아 연평균 29%의 수익률을 기록한 전설적인 투자가 피터 린치(Peter Lynch)나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놀라운 투자성과를 보면 이들의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효율적시장가설은 가정이 얼마나 센가에 세 가지로 나뉜다. 약형 효율적시장가설(weak-form EMH)은 과거 주가 정보가 이미 주가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지난 주가흐름을 분석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준강형 효율적시장가설(semistrong-form EMH)은 공개된 모든 정보가 주가에 반영돼 있어 기술적 분석(technological analysis)과 기본적 분석(fundamental analysis) 모두 그다지 믿을 게 못 된다고 본다. 강형 효율적시장가설(strong-form EMH)은 기업 내부정보(inside information)를 비롯한 미공개 정보까지 모두 주가에 반영돼 있어 아무도 초과수익률을 얻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효율적시장가설 신봉자를 위한 조크 하나.

재규어 씨와 샤먼 박사가 여의도 증권가를 걷다 5만원권 한 장이 떨어져 있는 걸 보았다. 재규어 씨가 재빨리 주우려 하자 샤먼 박사가 말렸다.

“그냥 가세. 그게 진짜 5만원권 지폐라면 아직 여기 있을 턱이 없지.”  

 

금융위기로 효율적시장가설에 대한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샌포드 그로스먼(Sanford Grossman)과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이렇게 물었다. 주가가 이미 모든 정보를 반영하고 있다면 누가 힘들여 정보를 얻으려 하겠는가? (On the Impossibility of Informationally Efficient Market, 1980년 6월 American Economic Review) 헛수고가 될 게 뻔한 일이라면 아무도 아까운 시간과 돈을 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거대 금융회사들이 리서치에 그토록 많은 비용을 쏟아 붓는 까닭은 완벽한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시장에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증시 거품(bubble)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면 효율적시장가설에 대한 믿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주식 값에 거품이 끼었다면 똑똑한 투자자들(informed investors)은 앞다퉈 주식을 팔아 치움으로써 주가가 진정한 기업 가치를 반영하는 수준으로 돌아가도록 해줄 것이다.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주식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팔 것(공매도 short selling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똑똑한 투자자가 차익을 얻을 기회를 잡아도 실제 주식이나 자금을 빌려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거품 증시의 거센 물결을 돌릴 수 없다고 판단하면 똑똑한 투자자들조차 대세에 저항하지 않고 편승하려 할 것이다. 결국 거품을 더 키우는 것이다. 미국의 인터넷 거품이나 집값 거품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단 하루 새 주가가 22%나 폭락한 블랙먼데이(Black Monday)도 효율적시장가설에 대한 반론의 근거로 활용된다.

 

효율적시장가설에 대한 비판은 이 이론이 싹을 틔울 때부터 시작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이론은 위기의 주범으로까지 몰리며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이 이론의 주창자들은 “그럼 믿을 만한 대안을 내놔 보라”고 맞받아친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격렬한 논쟁 속에 뛰어들어 상반되는 이론들을 절충하고 종합해 더 나은 모형을 만들어내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물론 성공하면 노벨경제학상과 일확천금을 얻을 수도 있다. 샤먼 박사가 효율적시장가설의 설명력과 예측력에 대한 골치 아픈 실증연구를 할 때 재규어 씨는 손 쉬운 실험을 택했다. 여의도 증권거래소 주변에 5만원권 몇 장을 뿌려 놓고 얼마나 빨리 없어지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장경덕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