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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향기/생일잔치 의 의미

by 푸른들2 2010. 1. 6.

고전의 향기 - 예순  한 번째 이야기

생일잔치의 의미

2009. 05. 11. (월)

사람은 누구나 생일을 맞는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 친지들의 축하를 받고, 나이가 들면 자식과 형제, 벗들의 축하를 받는다. 이처럼 기쁜 날에는 모든 일이 생일을 맞은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 하나 있다. 생일이 있게 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부모이다. 생일이야말로 부모의 은혜를 생각해야 하는 날이다. 18세기의 학자 위백규(魏伯珪)는 뜻을 같이하는 벗들과 함께 매달 생일을 기념한 모임을 갖고 그 의미를 돌아보자는 제안의 글을 지었다.

천지가 생긴 지 오래인데 내가 한 번 세상에 태어났으니 행운이요, 수많은 만물 가운데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행운이다. 이 두 가지 행운을 가지고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니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고, 태어나 이 몸을 이루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귀한 존재가 없다. 이같이 큰 은혜를 받고 이같이 귀한 존재를 이루어 태어날 날에 태어나게 되었으니, 이 날이 어찌 기쁘고 즐거운 날이 아니겠는가? 예로부터 이 날 잔치를 한 것은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 날을 맞이하여 더 클 수 없는 은혜를 생각하면 부모를 차마 잊을 수 없고, 더 귀할 수 없는 귀함을 생각하면 내 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모를 차마 잊을 수 없다면 내가 어버이를 섬겨야 하는 도리를 알 수 있고, 내 몸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 내가 몸을 수양해야 하는 도리를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어버이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내 몸을 제대로 수양하지 못하면 눈과 코가 제대로 된 사람의 모습을 지니고 있더라도 절로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살아도 허사가 되고 사람으로 태어나도 짐승이 될 뿐이다. 돌이킬 수 없는 삶이 허사가 되고, 거듭날 수 없는 몸이 짐승이 되어 버린다면 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게다가 우리 부모가 낳고 기르시느라 고생하시고 정성을 다하셨는데 이렇게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낳아서 짐승의 부모가 되고 만다면, 부모는 원통하고 분하여 피눈물이 나고 애간장이 다 녹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풍속을 따라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잔치를 벌여 즐기면서 “이 날은 내 생일이다.”라고 한다면 과연 어떻겠는가? 이렇게 짐승으로 태어난 날을 드러내놓고 칭송한다면 하늘의 태양도 성나고 부끄러워 대낮조차 어두컴컴해질 것이다.

백 년 인생에서 이 날은 해마다 돌아온다. 정말 사람의 마음을 지닌 자라면 늘 이 점을 명심하여 어버이를 잊지 않고 내 몸을 잊지 않을 것이니, 스스로 경계하고 두려워할 바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마다 생일이 돌아오는 것이 어찌 큰 행운이 아니겠는가? 생일을 행운으로 여긴다면 당연히 술과 음식을 차려 놓고서 어버이를 대접하고 형제를 즐겁게 하며 이웃을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사람답지 않은 사람인데도 이렇게 잔치를 벌인다면, 이것은 어버이와 형제를 속이고 이웃에게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 열 몇 명이 의견을 모아서 생일잔치를 함께 하기로 하고 각자 자기 생일날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초대하기로 하였다. 그러면 한 해 동안 모이지 않는 달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날 태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이지만 모이는 모임 이름이 생일회(生日會)이니, 내 마음을 스스로 경계하는 일을 매달 이 날에 할 수 있는 것이다. 1년 12개월 중에 달마다 생일이 있으니 1년 동안 나는 행운을 얻은 사람이 되고, 1,200개월 중에 해마다 생일이 있으니 100년 동안 나는 행운을 온전하게 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과연 행운을 얻어 내 행운을 온전하게 한다면, 내 부모의 행운도 지극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마음을 경계하고 몸을 수양하는 방법은 과연 어떠해야 하겠는가? 사람 중에 더 귀할 수 없는 존재가 성인이다. 옛글에 요(堯)는 신실함과 공경함[允恭]을 말하였으며, 순(舜)은 온화함과 공경함[溫恭]을 말하였고, 우(禹)는 자만하지 말라[弗滿] 하였다. 탕(湯)은 성스러움과 공경함[聖敬]을 말하였으며, 문왕(文王)은 아름답고 공경함[懿恭]을 말하였고, 공자(孔子)는 온화함과 공경함[溫恭]을 말하였다. 공경이란 덕의 기본이다. 이것으로 어버이를 섬기면 효가 되고, 형제와 함께 한다면 우애가 되며, 벗과 사귄다면 조화가 될 것이고, 자녀를 양육한다면 자애가 될 것이며, 사물을 접하면 잘 다스려질 것이다. 더 나아가면 성현이 될 것이요, 못해도 좋은 사람은 될 수 있을 것이니, 부모를 위태롭게 하거나 욕보이는 일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공경이라는 말이 겉으로 지나치게 신중하고 공손히 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데 요령이 있으니, 《논어》에서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우리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 이렇게 스스로 힘써야 할 것이다.        

 

▶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_필자미상(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 위백규, 〈생일 모임에 붙인 글(生日會序)〉《존재집(存齋集)》

※ 이 글의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 수록된 한국문집총간 243집 《존재집(存齋集)》20권 서(序) 생일회서(生日會序)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원문 바로가기]

[해설]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1727-1798)는 조선 후기 호남을 대표하는 큰 학자다. 학자는 사소한 일상사에서도 의미를 캐내는 사람이다. 위백규는 사람들이 생일잔치를 벌이는 풍습을 보고서 생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였다.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만물 가운데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참으로 행운이다. 사람들은 이 행운을 기뻐하여 생일잔치를 벌인다. 그러나 생일은 부모가 낳아준 은혜를 헤아리고 부모가 만들어준 신체를 수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부모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신체를 잘 수양하지 못하면 외모가 사람 꼴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면 자신의 부모도 짐승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부모가 낳아준 은혜를 되새기고 부모가 만들어준 신체를 수양하는 방법은 매사에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 데서 출발한다. 자신의 생일을 맞이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가질 것은 물론이요, 타인의 생일에도 공경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면 생애의 모든 날이 자신의 공경하는 마음을 돌아보는 생일이 될 것이라 하였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행운을 온전하게 하는 법이다.

사람은 1년에 한 번 생일을 맞는다. 그러나 벗이나 친지 등의 생일까지 합하면 매달 생일을 맞게 된다. 매달 생일을 맞고 매일 생일로 삼아 그때마다 생일의 의미를 생각하여 자신의 마음을 반성하고 몸을 수양하는 날로 삼아라. 이것이 성인이 되는 길이요, 성인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못난 인간은 되지 아니할 것이니.

        

글쓴이 / 이종묵

*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 저서(역서)
- 해동강서시파연구, 태학사, 1995.
-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태학사, 2002.
- 누워서 노니는 산수, 태학사, 2002.
- 浮休子談論, 홍익출판사, 2002.
- 조선의 문화공간(1-4), 휴머니스트, 2006.
- 우리 한시를 읽는다, 돌베개,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