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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 왼쪽 눈 실명 원인은 뇌졸중

by 푸른들2 2009. 11. 11.

[신경과학자가 본 문학·예술인①] 헨델, 왼쪽 눈 실명 원인은 뇌졸중

▲ 헨델 / 조선일보DB

런던은 번화한 큰 길에서 한 블록만 뒷길로 들어가면 전통적인 조용한 동네가 있다. 작곡가 헨델이 살았던 집도 복잡한 뉴본드 거리에서 조금 들어간 브룩스에 있다.

헨델은 1685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런던으로 옮겨 오래 살았다. 바하가 유명한 음악가 집안이고 평생 독일에 산 것과 달리 의사였던 헨델의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로 성공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헨델은 고국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마다하고 외국으로 이주한 이단아였다. 젊은 시절 헨델은 독일어뿐 아니라 영어, 불어, 이태리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발랄하고 불 같은 성격이었다.

헨델은 74세까지 살았으니 당시로 보면 장수했다. 하지만 음악가로 승승장구하던 그도 중년 이후에는 병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그 병은 뇌졸중으로 추정된다. 첫 증세는 1737 년 그가 52세 때 발생했는데 당시 런던 이브닝 포스트지는 '유명한 작곡가 헨델이 갑자기 오른 손을 못쓰게 됐다. 만일 이것이 회복되지 않으면 청중들은 다시는 그의 훌륭한 작품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고 기록했다.

다행히 헨델의 증세는 얼마 후 회복됐지만 일시적 마비 증세는 1743년과 1745년 등 적어도 두 차례 이상 반복됐다. 마비는 늘 오른손에만 왔다. 그가 쓴 편지에 '4개의 손가락이 마비되어 연주할 수 없다'고 기록돼 있다. 1751 년부터는 다른 증세가 생겼다. 갑자기 시력이 나빠진 것이다.

이번에는 왼쪽 눈이 문제가 됐다. 다행히 이 증세도 점차 좋아져 10 일쯤 지난 뒤 다시 일을 시작했다. 왼쪽 눈 시력의 감퇴 증세는 그 뒤에도 여러 차례 반복됐다. 1753 년 헨델은 또 왼쪽 시력이 나빠졌는데, 이번에는 회복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때부터는 다른 사람이 악보를 받아 적어야 했다.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그는 왼쪽 경동맥(목동맥)이 동맥경화증으로 심하게 좁아진 듯하다. 이 경동맥이 좁아진 곳에서 발생한 혈전(피떡)이 혈관을 타고 뇌로 이동해 작은 혈관(중대뇌동맥)의 가지를 막아 왼쪽 운동 중추를 손상시켜 오른손 마비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시력 감퇴도 뇌졸중 증세의 하나다. 경동맥은 여러 개의 가지로 나눠지는데 첫 번째 가지가 눈의 망막에 혈류를 공급하는 안(眼)동맥이다. 경동맥에서 발생한 혈전이 안동맥을 막으면 혈류가 공급되지 않아 망막이 손상되고 시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 때 혈전이 녹으면 시력이 회복되는데 이처럼 경동맥에서 생긴 혈전 때문에 한 쪽 시력이 잠시 나빠졌다가 회복되는 현상을 '흑내장'이라고도 한다. 눈으로 오는 가벼운 뇌졸중이다. 대개 저절로 회복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망막 손상이 심하면 회복하지 못하고 실명에 이르기도 한다.

경동맥 협착이 있는 사람들은 위험 인자를 관리하고, 항혈소판제를 복용해야 한다. 협착이 심하면 수술이나 스텐트(그물망)을 삽입해 혈관을 넓혀주어야 한다.

▲ 김종성 교수

김종성 교수는

뇌 연구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뇌에 관해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란 일반인을 위한 책을 낼만큼 글쓰기도 좋아한다. 학회 참석과 강연 등을 위해 해외출장을 갈 때마다 짬을 내 문학·예술 등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의 생가와 박물관을 찾는 게 취미.

발로 찾아다니며 직접 보고 들을 것을 바탕으로 문학·예술가의 삶과 그들을 괴롭혔던 질병을 신경과학적으로 풀었다.

 

/ 김종성·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