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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빙자 간음 형사처벌 56년 만에 역사속으로

by 푸른들2 2009. 11. 29.


혼인빙자 간음 형사처벌 56년 만에 역사속으로

ㆍ변화된 사회상 인정… “남녀 모두의 기본권 침해” 지적

헌법재판소가 26일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혼인빙자간음죄 조항은 1953년 형법 제정 이래 5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2002년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에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헌재는 전통적 성도덕 유지보다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자유로운 행사를 더 중요시하는 변화된 사회상을 인정했다. 혼인빙자간음에 형사처벌의 잣대는 들이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법조항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의 재심 청구나 형사 보상금 청구도 봇물처럼 쏟아질 것으로 전망돼 큰 파장이 예상된다.


◇ “남녀 문제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돼” =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6명의 의견은 이 조항이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아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가 성행위와 같은 사생활을 간섭·규제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헌재는 법조항에 명시된 글귀도 문제삼았다. 재판부는 “형법 304조가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을 ‘음행에 상습이 없는 여성’으로만 한정해 남성우월적 정조 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인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이 조항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성행위 결정요소에는 돈을 벌기 위함이나 자유분방한 성적 취향 등 다양한 이유가 개입될 수 있어 음행의 상습여부를 형법이 구분해 한쪽을 보호 대상에서 제외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전통적 성 도덕 유지라는 사회적 법익도 중요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의 자유로운 행사라는 개인의 법익이 한층 중요시되는 사회로 바뀌고 있어 이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성 개방 풍조가 확산된 사회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인 셈이다.

반면 이강국·조대현·송두환 등 3인의 재판관은 합헌 의견으로 맞섰다. 이들은 “결혼할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까지 ‘법이 보호해야 할 사생활’로 보기 어렵다”며 “친고죄(당사자 고소에 의해서만 사건이 성립) 조항으로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혼인빙자간음죄가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 재심·형사보상금 청구 쏟아질 듯 = 위헌 결정으로 혼인빙자간음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의 재심 청구가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헌재법 47조 등은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났을 경우 이 법조항에 따라 처벌받은 사람들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돼 있다. 1953년 이후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받은 사람들은 전부 다시 법원의 판단을 구해 무죄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통계가 잡혀 있는 81년부터 지난해까지 혼인빙자간음죄로 검찰에 기소된 사람은 15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경우 형사보상금을 받을 수 있고 재판 중인 사람들은 공소기각으로 풀려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현행 형법조항이 사라지게 됨에 따라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처벌 방법 또한 모호하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둘 사이에 돈이 오가지 않았다면 사기 혐의도 적용할 수 없다”며 “사실상 형사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관계자는 “형법이 아니라 민사소송 절차를 통해 피해자들이 위자료 소송 등을 제기하는 방법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홍두기자 ph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