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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자료모음

사람 거울

by 푸른들2 2009. 7. 16.


암행어사 박문수의 이야기다.
변복을 한 그가 파자점(破字占)을 보았다.
파자점이란 한자를 풀어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여러 글자 중 복(卜)자를 짚자 점쟁이 노인이 놀라 머리를 조아렸다.
 “허리에 패를 찼으니 어사임이 분명하외다.” 
그걸 본 거지가 똑같은 글자를 짚었다.
이번엔 노인이 호통을 쳤다.
 “허리에 밥그릇을 찼으니 거지로구나!”
태조 이성계에게도 비슷한 설화가 전해진다. 젊은 시절 그는 파자점을 잘보는 도승을 찾아간다. 앞날의 운세를 물으며 그가 짚은 글자는 문(問)자였다. “좌로 봐도 우로 봐도 군(君·임금)이니 지존이 될 것이오.” 도승은 머리 숙여 합장하며 예를 표했다. 미심쩍게 여긴 이성계는 거지에게 자신의 옷을 입힌 다음 도승을 찾아가 같은 글자를 짚게 했다. “문(門) 앞에서 입(口) 벌리고 있으니 당신은 걸인이오.” 풀이가 다른 까닭을 이성계가 묻자 도승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똑같은 점괘라도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귀공의 기상은 왕이 될 정도로 팔팔한데, 저 거지는 좋은 옷을 입었어도 얼굴색이 다 죽어 있습니다.” 겉모습은 거지나 이성계나 같았어도 사람이 달랐던 것이다. 왕이 될 사람을 알아본 도승은 바로 무학대사였다고 한다.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에 자신을 비춰 보라는 옛말이 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이란 경구다. 신영복 교수의 책 <나무야, 나무야>에 인용돼 꽤 알려진 말이다. 원래는 춘추전국시대 묵자의 말로 비칠 감(鑒) 대신 거울 경(鏡)자를 썼다. 물에 비추면 겉모습이 보일 뿐이지만 사람에게 비추면 자신의 운명이 보인다고 한다. <사기>의 ‘범저열전’에선 ‘경어인(鏡於人)’을 이렇게 풀이한다. “물을 거울로 삼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남을 거울로 삼는 사람은 길흉을 안다.” 기축년(己丑年) 새해의 운세에 대해 역술인들이 이번에도 여러 예측을 내놓았다. 대체로 나라 경제는 더 어렵고 정치는 시끄러우며 큰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흉흉한 전망이지만 똑같은 운세라도 사람에 따라 길흉은 각기 다를 것이다. 역술인이 아니어도 ‘사람거울’에 비추면 자신의 앞날이 보인다. 나라 사람들의 삶을 거울로 삼으면 그 나라 지도자의 길흉도 보인다. <김태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