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삼성병원] 살면서 많이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여러분의 가장 오랜 기억은 무엇인가요?"일 것이다.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대략 몇 살 때의 일인지?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하필이면 그 기억이 나는지? 등등 재미있게 질문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도 한번 떠올려보라. 필자는 대략 5살 때의 일이 기억이 나는데 동전을 가지고 가다가 하수구에 동전이 빠져서 슬퍼하고 망연자실했던 기억인 것 같다. 사람마다 다양한 첫 기억을 얘기하겠지만 여기에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둘째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첫 기억은 대체적으로 '강한 감정의 동요'를 느꼈던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평범하게 집에서 TV를 본 경우나 잠을 잤던 때를 나의 첫 기억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첫 기억들의 예를 보자. 부모와 어디에 놀러 가서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나 부모에게 심하게 혼이 난 기억, 친구와 싸워서 맞고 울면서 집에 왔던 기억, 맘에 쏙 드는 장난감을 발견해 흥분하던 기억 등등이 있다. 공통점이 있는가? 그렇다. 이런 기억들은 주로 강한 감정의 굴곡을 경험했던 순간들이 많더라는 것이다. 그 감정이 행복이나 기쁨 같은 긍정적인 것들도 있을 테고, 슬픔이나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도 있을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한 정보 중 하나로 이러한 내담자의 첫 기억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첫 기억뿐 아니라 여러분들 스스로 지금 기억나는 과거의 여러 순간들을 떠올려 보라. 아마도 대부분 이렇게 강한 감정의 동요를 느꼈던 순간들이 많을 것이다. 교과서만 보고 외워야 하는 건조한 내용들이 더 기억하기도 어렵고 오래 가지도 않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또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위에서 얘기한 첫 번째 공통점의 이유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왜 갓난아기 때의 기억을 잘 못하나? 단순히 시간이 더 오래 경과했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기 때는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기쁘고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이것이 무슨 감정인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부모의 교육에 의해 내가 느끼는 현재의 감정이 '기쁨' 인지 '불안'인지 알게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며 이러한 감정들을 스스로 느끼고 이해하는 능력이 생기고 난 후에야 내가 경험하는 것들을 기억하는 능력도 더욱 커지게 된다. 뇌과학적으로 봐도 이것은 일리가 있는데 우리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인 '해마'와 '감정을 처리하는 부분' 인 '대뇌변연계'는 신경줄기를 통해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강한 감정을 동반하는 경험을 하면 감정을 처리하는 뇌의 부분에서 소위 이 경험에 '접착제 도포와 망치질'을 하여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에 이 경험이 더 오래 남도록 하는 것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요즘 현대의 성인들은 기억력이 부족하다.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심지어 어제의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강한 기억으로 남겨지는 경험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할 정도이다. 우리의 감정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최근 한 주, 혹은 한 달 전에 있었던 일들 중 기억나는 것들을 떠올려보자. 애써서 기억을 하려니 몇 가지 기억나는 게 있기는 한 것 같은데 희미하다. 그나마도 좋은 기억보다는 화가 났거나, 불안했던 기억이 많다. 기쁨은 어디로 간 걸까? 감정을 금고에서 끄집어내자. 엄밀히 말하면 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내 능력들을 다시 발휘해 보자. 난 아직도 여러 가지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걸 내가 '느끼려'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아이와 놀아주면서도 내가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와 놀면서 좋아하는 이 아이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좀더 느껴 보자. 가까운 사람에게 지금 난 행복하다고, 지금 나 화난다고 얘기도 해보자. 유치하다고? 좀 유치하면 어떤가? 순간의 유치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확인해 보라. 우울증은 어쩌면 우리가 우리 감정을 잘 느끼고 표현하지 못해서 생기는 결과일 수도 있다. "난 내 삶이 너무 무미건조한데요."라고 얘기하기 전에 하루를 찬찬히 살펴보라. 아마도 여러분의 감정은 계속 요동치고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 이승민 전문의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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