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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도시락

by 푸른들2 2011. 2. 13.
 


박근혜의 도시락


3월 23일 잠실학생체육관,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당대표로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이다.

 

행사장 북쪽출입구 일반석에서 한 중년신사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근혜야, 잘됐다. 정말 축하한다. 이제야 30년 전에 진 마음의 빚을....”

 

현장은 떠나갈듯 한 환호의 함성에 휩싸이고 [아~대한민국! 아~대한민국!] 하는 찬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년신사는 행사장을 빠져나간다.

1972년 11월 어느 날, 대학가에서 유신철폐의 움직임이 극에 달하고 있을 때 서강대학교 구내식당에서는 벌어진 일이다. 한 남학생이 점심식사를 하려는 한 여학생에게 다가서더니 "야, 너는 이 땅에서 나는 쌀로 밥해먹을 자격이 없어!" 하고 악을 쓰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듯 당황한 여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젓가락 끝만 입으로 빨고 있었다.

그 남학생은 또다시 "밥 먹지 말란 말이야!" 하면서 식탁위에 있던 여학생의 도시락을 바닥에 팽개쳤다. 주변의 다른 학생들도 달려와 동조하기 시작했다. "우~~~ 철민이 잘 한다" "맞아, 쟤는 밥 먹을 자격이 없다구" "독재자의 딸도 밥 먹고 사나?" 소란이 계속되었다. 그 때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두 명이 달려들어 여학생의 도시락을 팽개친 철민이의 팔을 꺾어 잡았다.

 

그 여학생은 박근혜 였고 청년 둘은 경호원들이었다.

순간, 박근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아저씨! 이러지 마셔요. 당장 그 팔 놓으세요. 여기는 상아탑이란 말이 예요” 하고 소리치며 강하게 제지하는 것이었다.

 

건장한 청년 둘은 머쓱한 표정으로 구내식당을 빠져나갔다. 분위기는 진정되고 조용했다. 그 여학생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식당 바닥에 팽개쳐진 밥과 반찬을 도시락에 주워 담는 것이었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한 학생이 또 빈정거리는 것이었다.

 

"어? 대통령 딸이 보리밥을? 게다가 무장아찌까지~?

이거 쇼하는 것 아니야?”

그 사건 이후로 이상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박근혜 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딸 도시락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청와대 무장아찌 맛 좀 보자는 심사였고 이 나라 최고권부의 중심에 살고 있는 학생의 도시락이 보리밥에 무장아찌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일까?

 

박근혜는 그날 학생들에게 의견을 냈다. 오늘 오후강의는 딧치(ditch)하자. 대신 자기가 살고있는 청와대 구경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별관 이층에 여학생 다섯이 모였다.

 

그 학생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박근혜의 초라한 책상 때문이었다. 박근혜가 여고 2학년 때 책상이 작다고 불평하자 아버지 박대통령께서 손수 만들어 줬다는 책상, 페인트칠도 하지 않은 원목 그대로의 책상을 보고 놀랐던 것이다.

이어 화장실을 다녀온 한 학생이 화장실이 좀 거시기하다는 거였다. 화장실 워시가 시원찮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함께 까르르 웃자 박근혜는 “그래도 내려갈 것은 다 내려가지 않니?”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 유심히 호기심 많았던 혜옥이(현재모화장품회사사장)라는 학생이 "얘들아, 이리 좀 와 봐. 이게 뭐니. 이게 뭐야? 난 이런 거 처음 본다"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변기 속에 있는 회 벽돌을 본 것이다.

박근혜는 설명했다. "그거 빼내면 엄마한테 야단맞어~. 우리엄마가 넣어 놓은 거야. 수돗물 아끼신다고... 너희들도 집에 가면 물 아껴 써, 지금 호남지방에는 가뭄이 들어 모를 못 낸다고 하지 않니?”

 

아~ 이럴 수가? 정말 이럴 수가? 그날 저녁 학생들은 육여사가 손수 만들어 준 수제비국을 먹고 숙연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청와대를 나왔다고 한다.

그 사건이후 박근혜의 친구 혜옥이라는 학생은 한국최고의 화장품회사 사장이 되기까지 청와대에서 받은 근검, 절약의 쇼크가 바탕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한다. 세월이 흘러 박근혜의 도시락을 엎어버렸던 철민이란 학생도 사회인이 되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고, [박/근/혜] 이름 석 자만 보고 들어도 부끄럽고 죄스럽기만 했다는 것이다.

팽개쳐진 도시락을 입술 깨물며 주워 담고 있던 그 여학생에게 어떤 말로 사과를 해야 할지... 근짱(그후 박근혜를 근짱으로 불렀다함)이 그날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지금의 후배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30년 세월이 흘러 중년신사가 된 철민이는 마음을 부저지할 길이 없어 남몰래 당대표 경선 장을 찾아 간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근혜야 부탁한다, 근혜야 부탁해! 근혜야 대한민국을 부탁한다.”는 말을 되 뇌이며 행사장을 떠났다는 것이다. (끝)

♣ PS...이 글은 7년 전, 한나라당 당대표 선출당시 한 네티즌이 쓴 내용을 압축

        정리해서 올린 것임을 밝혀둡니다.....박근혜가 청와대에서 호의호식했다고

        몇일전 주장했던 강명순의원에게 이 글을 정중히 올린다